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정신병, 정신분열증을 주제로, 혹은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어떠한 영상이라도 별 의미 없이 촬영하더라도 관객들은 ‘정신 착란 증세이니까..’라고 받아들일 것 같아 만드는 게 그리 어렵진 않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영화 곳곳에 배치된 은유적 장치들을 해석하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보는 재미가 있다.

영화의 전면에 배치된 것은 가정과 정신 병원의 주변 인물들의 영군에 대한 헌신이다. 영군의 엄마, 최의사. 일순, 왕곱단 등의 환자들까지 모두 나름의 방법으로 영군의 치유를 위해 힘쓴다. 영군의 엄마는 일찌감치 망상에 빠진 외할머니와 함께 정신이 이상해진 영군을 어떻게든 집에서 돌봐주려 했으나 실패했다. 자신이 사이보그라고 생각하는 영군을 다만 달래가며 어린 아이 다루듯 했다. 최의사는 영군을 치료하려 애썼으나 그녀가 밥을 안 먹는 원인을, 상처받은 원인을 의사와 환자의 관계로써 객관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추궁했고 유효하지 못했다.

유일하게 영군의 마음을 열어 밥 먹지 않는 것을 고쳐주고 결국엔 존재의 이유마저 찾아줄 수 있게 됐던 일순이 택한 방법은 공감이다. 일순은 또 다른 환자로서, 영군을 타자화하지 않고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다. 영군이 스스로를 사이보그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를 추궁하지 않고 밥 먹는 문제 역시 그녀의 방식대로 일순은 도와주었다. 의사가 보기에는 영군의 망상을 심화시키는 방법일 수 있었지만 일순은 영군이 그 망상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다.

그리고 일순은 영군이 사이보그로서 하얀맨들을 처단하는 목적을 달성케 하기 위해 방해될 수 있는 동정심과 죄책감 등의 인간적인 감정을 그녀에게서 훔쳐오고 그것을 대신 느꼈다. 일순은 영군을 위해 물리적, 감정적으로 헌신함으로써 그녀의 엄마, 전문의도 달성하지 못한 어느 부분으로의 접근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영화에서는 너무나 모호하게 나타나지만 마지막에 폭우가 내린 후 무지개가 뜨는 것으로 끝맺음하는 것으로 보아 낙관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귀결되리라 생각한다.

<박쥐>에서도 감정의 힘은 적중한다. 태주는 자신을 전혀 물리적으로 박해하지 않지만 다만 한 마리의 강아지처럼 다루는 남편 강우와 라여사를 버리고 자신을 거칠게 다루지만 진심으로 대해주는 흡혈귀 현상현 신부에게 간다. 고된 노동에 지친 태주는, 흡혈귀가 되어 모든 쾌락을 갈수하는 상현과 조우함으로써 스스로 억눌려왔던 쾌락의 분출 대상과 방법을 모색한다.

자신이 죽인 강우가 전혀 무고한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 상현은 분노한다. 그동안 상현은 강우를 죽인 이유를 다만 그에게 박해받는 태주를 위한 사랑의 마음에 기인한 것으로 합리화하고 죄책감을 애써 극복했지만 그것은 단지 태주의 육체를 단독으로 점유하기 위함에 지나지 않았던 것임을 깨닫고 그녀의 목을 졸라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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